남자 포르노배우들의정력 유지 비법 by 조이엔조이 성인용품 할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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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인용품 댓글 0건 조회 987,373회 작성일 21-04-23 11:21본문
노인 포르노배우의 대표주자는 미국의 최고령 포르노배우로 불려지고 있는 [데이브 커밍스](Dave Cummings). 그는 성의 즐거움에 있어서 나이란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실천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데이브는 55세에 이르러 포르노 배우로 데뷔했고, 환갑을 넘긴 현재까지 무려 200여 편 이상의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모든 사람들은 성적 갈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무해한 공상과 건강한 욕망을 즐기도록 돕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포르노를 선택한 것이다.]
데이브 커밍스의 굳건한 확신은 많은 나이 외에 포르노배우로서 유례가 없는 전력에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행정학을 전공했다. 또한 미군 장교로서 25년 동안이나 복무한 뒤 중령으로 예편했다. 아무리 개방적인 미국이라 해도 예비역 육군 중령이 포르노 배우이자 제작자로 변신한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근엄한 남자의 표상처럼 여겨진 노인을 포르노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감춰진 성적욕구를 만족시키면서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데이브 커밍스는 평범한 노인에서부터 의사나 상원의원 혹은 대학총장에 이르는 역할을 현실적으로 소화해냈다. 그것은 사회의 금기를 깨는 포르노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데이브 커밍스는 포르노에서 수많은 젊고 유명한 여성 포르노 스타와 섹스를 나눴다. 그리고 나이와 정력은 무관한 것임을 눈앞에 보여줬다. 실제로 많은 여성 포르노배우들은 지치지 않고 샘솟는 정력에 반해 데이브 커밍스와의 작업(?)을 즐거워하고 먼저 출연을 요청해오기도 한단다. \
물론 그의 팬들 중 상당수는 소녀와의 섹스를 꿈꾸는 이른바 [로리타] 마니아다. 하지만 데이브 커밍스는 이런 특별한 상상력을 대신하는 대표자라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모든 남자가 꿈꾸고는 있지만 실행하긴 어려운 일을 그는 용기 하나로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부를 때 [미국의 영웅](군인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인 듯 함.) 혹은 [포르노계의 존 글렌](존 글렌은 77세의 최고령 우주비행사였음)이란 찬사를 보낸다.
데이브 커밍스는 포르노배우가 되기 전까지 평범한 가장이었다. 1985년 이혼했지만 그는 22년간의 결혼생활에 아주 성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겐 성장한 아들과 딸 그리고 세 명의 손자까지 있다. 그래서인지 데이브 커밍스는 포르노를 제작하거나 촬영할 때 가족적인 분위기를 추구한다. 또한 그는 재미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즐기는 것이지 돈 때문에 포르노를 찍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어쨌거나 지금쯤 가장 궁금한 것은 그의 정력에 관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비법은 없다. 그렇다고 비아그라를 복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데이브 커밍스는 단지 매일 3-6마일을 아름다운 여성들과 함께 달린단다. 건강을 위해선 잘 먹고 비타민을 복용하는 정도다. 다만 포르노 배우로서 그의 철학은 섹스에 앞서 즐거운 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노년의 섹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인드 콘트롤이라고나 할까?
노익장이란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브 커밍스와는 차원이 다른 포르노스타가 또 있다. [포르노의 전설]로 칭송받고 있는 론 제레미(Ron Jeremy). 올해 50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포르노스타다. 데이브 커밍스가 뒤늦게 포르노업계에 뛰어든 데에 비해 론 제레미는 포르노업계를 평생 지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론 제리미의 본명은 론 하이트(Ron Hyatt). 콧수염과 작은 발 그리고 몸에 돋아난 무성한 털과 뚱뚱한 몸은 이제 모두 그의 상징이 됐다. 론 제레미는 미남도 아니고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지니지도 못했다.
아무리 포르노배우라 해도 잘생긴 외모와 잘빠진 몸은 스타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작고 볼품 없었던 론 제레미는 특유의 개성으로 포르노의 역사를 개척해 왔다. 그는 포르노의 오스카로 불리는 AVN시상식에서 [나는 만인의 남자이며 모든 남자의 공상을 대신 실천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까지 선정됐던 론 제레미는 포르노 속에서 청춘과 중년 그리고 노년을 맞고 있다. 그는 수많은 여성 포르노스타와 성행위를 펼쳤다. 그리고 포르노 여배우들은 그를 거쳐감으로 해서 스타덤에 올랐다.
1978년 포르노배우로 데뷔한 그는 무려 1,500여 편의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다. 일상적인 성생활을 즐기는 남자들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본다 해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20년 남짓한 시간에 과연 1,500번의 섹스를 나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론 제레미는 여전히 [헤이, 나는 해낼 수 있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술을 먹어서 안 서고, 나이가 먹어서 안 서고, 피곤해서 안 선다는 변명 따위는 무색해 보이는 것이다. 론 제레미가 주장하는 것은 정력차원을 떠나 남자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50대에 이른 지금도 여성의 유혹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아니 오히려 먼저 작업(?)에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올 1월에 미국에서 열린 AVN엑스포에서 그를 직접 만났을 때 목격한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론 제레미의 주변은 항상 수많은 여성 팬들로 북적였다. 그는 기념촬영을 요청하는 팬들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곤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의 손은 쉴 사이 없이 여성의 가슴과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별다른 거부의 몸짓을 보내지 않는 한 그의 과감한 공격은 끊임없이 계속되곤 했다. 누가 보건 말건 이빨로 유두를 깨물고 가슴을 애무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이었지만 론 제레미와 함께라면 여성들조차 용감해졌다. 론 제레미는 저급한 욕설과 농담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그를 더 특별하게 하고 주목받게 한다. 그가 포르노배우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920년대에 그는 뉴욕의 한 식당에서 급사로 일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여자친구는 그의 사진을 플레이걸이란 잡지에 보냈다. 이후 포르노배우로서 론 제레미의 역사는 시작됐다.
데이브 커밍스와 론 제레미에 비하면 막내 동생 격이지만 맥스 하드코어(Max Hardcore)도 빼놓을 수 없는 포르노스타다. 그는 1959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치면 40대 중반쯤 된 셈인데 왕성한 섹스를 즐길만한 나이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는 아주 과격하고 변태적인 포르노로 유명세를 얻었다. 서부의 사나이를 연상시키는 맥스의 상징은 모자와 통가죽 구두다. 맥스의 성적 취향은 그의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카톨릭계 학교를 다녔는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아주 까다로웠다고 한다.
맥스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건설과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때부터 포르노그래피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1990년 맥스는 형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는 이때 [미스터 피퍼스]라는 아마추어 비디오의 제작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히트를 기록했고 그는 포르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맥스는 1992년 [제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작품은 [최대의 하드코어-항문의 모험]시리즈였다. 데이브 커밍스나 론 제레미에 비해 맥스에겐 신세대적인 섹스관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섹스보다는 새로운 섹스에 대한 탐구정신이 흘러 넘쳤던 것이다. 때문에 맥스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혹독한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는 포르노의 세분화와 장르화에 대해 역설한다. 오늘날 포르노는 단지 성행위만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통해 어떤 구분이 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맥스는 1994년에야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의외로 그가 포르노에 있어서 지향하는 것은 우상 파괴주의라고 한다. 중년에 이른 나이지만 그는 포르노를 통해 도전정신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포르노 필름 밖에서 맥스는 지극히 점잖은 모습을 보여준다. 포르노업계에서는 그가 앞으로 포르노의 새로운 역사를 쓸 주인공이라고 믿고 있다. 현실적으로 포르노는 항상 젊은 피를 필요로 한다. 보통 우리들의 성은 청춘에서 절정을 이루고 차차 시들어 간다. 실제로 포르노의 주 소비층은 20-30대를 중심으로 몰려있다. 때문에 포르노제작자들은 늘 풋풋한 신인에게 눈길을 돌리기 일쑤다.
물론 이런 일들은 포르노의 세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식되는 섹스는 오로지 젊은층만을 대상으로 논의된다. 그러나 성적 욕구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세대를 뛰어넘어 교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섹스다. 나이든 포르노스타들이 수십 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젊은 여배우와 성행위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과 생활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섹스 앞에서만은 누구나 평등하게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착각 중 하나는 나이가 들면 섹스에 있어서도 점잖아져야 한다는 선입견이다. 나아가 섹스 파트너가 같은 세대에 머물러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큰 오류다. 솔직히 한국에서 노년의 성은 돈과 권력에 의해서만 향유되는 경향이 있다. 재벌총수나 정치인들은 환갑을 넘겨도 끊임없이 젊은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별다른 비난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노인들은 공원이나 헤매며 욕망을 억누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망든 노인네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 데이브 커밍스와 같은 인물들이 미국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절실히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평범한 노인들도 용기를 가질 것 아닌가. 포르노는 연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거짓은 아니다. 40대, 50대를 넘어 60대 남성도 얼마든지 20대 청춘 못지않게 섹스를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길게 즐길 수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사회는 급격하게 노령화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죽어도 좋아] 파문에서도 엿볼 수 있듯 우리는 특히 노년의 성에 대해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여자는 폐경이 오거나 남자는 새벽에 서지 않으면 인생은 종친 것으로 알고 늙어가야 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알릴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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